울진 출신 미술계 거장 유영국의 서거 20주기를 앞두고

2020.12.17.I경북일보

  • 이헌태 울진 국립해양과학관 상임이사
  •  |  2020년 12월 17일



미국 뉴욕의 리졸리 출판사에서 추상화가 유영국의 영문 전집 “유영국 : 정수(Yoo Youngkuk; Quintessence)”를 펴냈다는 소식이 지난 1일 전해졌다.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예술 전문 리졸리 출판사가 우리나라의 한 작가를 깊이 연구해 그의 전집에 해당하는 모노그래프를 발간한 것은 유영국이 처음이라고 한다.

리졸리 출판사의 모노그래프 발간으로 명성을 더욱 높이게 된 유영국 화백(劉永國·1916~2002)은 자연을 아름다운 색채와 점선면의 기본 조형 요소로 환원한 추상미술의 거장이다. 미술계에서는 유영국을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 대표 화가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한 평론가는 “한국 20세기 추상미술의 절정에 바로 유영국이 있다”며 “그는 화폭을 통해 산과 바다, 하늘 그 자연을 환상적인 빛깔로 물들이는 마법을 펼쳤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미술경매 시장에서 유영국의 1960년 작 ‘작품’이 7억7000만 원에 낙찰되었는데, 앞으로 더 오를 전망이라고 한다.

이처럼 미술계의 평가는 국내에서나 세계에서나 드높지만 대중의 인지도는 여전히 낮다. 왜 그런지 의아하지만 유영국의 삶을 보면 수긍이 간다. 그는 1970년대 이후에는 두문불출하며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했다. 언론에도 평소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했다. 가족들에게 “내 이름의 미술관과 내 이름의 상을 제정하지 말라”고 유언하기도 했다. 또한 “내 생전에는 그림이 절대로 팔리지 않으니 그림으로 먹고 살 생각을 하지 말라”고 말하곤 했다. 오로지 작업에만 매진했고 판매와 홍보와는 담을 쌓았다.

그는 화단 데뷔 27년째인 1964년에야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98년 13회전까지 오직 개인전을 통해서만 자신의 창작 성과를 알렸는데, 평생 남긴 작품이 4백여 점이다. 유영국의 작품이 처음 판매된 시점은 만 60세 때인 1975년이었다고 한다.

유영국의 삶을 더듬어보면 그가 일관되게 자유를 추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제 강점기 경성제2고보(경복고) 재학 시절 일본인 교사가 학생 동향을 보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장인 자신을 구타하자 곧바로 자퇴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자유로운 삶을 위해 직업으로서 미술을 택했다. 고향인 울진 죽변에서 가업인 양조장 사업으로 큰돈을 벌고 있었지만 “금(金)논도 금산도 금밭도 싫다. 이제 그림을 그리겠다”며 미련 없이 서울로 올라갔다. 해방 후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할 때는 미대 학장의 간섭에 2년만에 사직했다. 홍대 미대 교수로 재직할 때는 강의가 늘자 작업에 방해된다며 3년만에 사직했다. 국전(國展)은 파벌의 폐해가 있다며 거부하고 미술단체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개인전만 열었다.

유영국의 고향은 경상북도 울진이다. 그는 서울 유학을 떠나기 전 유년 시절, 그리고 스물 일곱 살에 일본에서 귀국한 뒤에도 서울대 교수로 재직한 2년을 빼면 10년여를 고향 울진에서 어부로, 양조장 주인으로 살았다. 감성이 가장 풍부한 유년기와 청년기를 장대한 기세의 태백산맥과 끝없이 창창한 동해를 안은 고향 울진에서 보낸 셈이다. 그의 1984년 작 추상화 ‘산’은 정삼각형의 근사한 여러 개의 봉우리 모습을 하고 있는데, 영락없이 울진의 진산인 매화리의 남수산 전경이다. 유영국은 “나는 울진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자라는 동안 늘 바다와 산을 가까이에서 보고 즐길 수 있었던 환경 때문에 산을 그리기 시작하게 된 것이 오늘날까지 산을 주로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울진은 지금 관광, 레저, 해양과학 연구와 교육을 통해 발돋움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울진의 애향심은 물론 관광, 교육과 맞닿아 있는 거장 유영국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몇 해전 울진군이 그의 생가를 매입하고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듯했으나 지지부진하다.

우리나라 추상회화의 선구자이자 울진 출신으로 울진의 자연을 모티브로 작품 활동을 했고, 모노그래프 출간으로 세계적인 평가까지 받은 유영국 화백. 그의 업적을 다시 찾아내고 기리는 일은 서거 20주기를 2년 앞두고 울진에서 마땅히 적극 나서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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