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와 유영국, ‘한국적인 것’의 두 얼굴

2021.12.10.I중앙일보

문소영 문화부장 | 2021년 12월 10일


“우리는 넓은 세계에 살면서도 완전히 지방인이외다. 한국의 화가일지는 몰라도 세계의 화가는 아니외다.”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란 강렬한 민족의 노래인 것 같다. 파리라는 국제경기장에 나서니, 우리 하늘이 더욱 역력히 보였고, 우리의 노래가 강력히 들려왔다.”


위의 말들에서 드러나듯이 제1세대 추상화 거장 김환기(1913~64)는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미술을 이루어내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삼았다. 그 해답으로 처음에는 달·산·매화·학·백자항아리 등 전통적인 요소를 반(半)추상적으로 표현하는 두터운 질감의 유화를 주로 그렸다. 1956년부터 4년 동안 프랑스 파리에 체류했을 때도 그 스타일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다가 뉴욕에 가서는 직접적인 전통 요소는 넣지 않되 질감이 전통 수묵화처럼 맑고 동아시아 우주관을 내포한 완전추상을 내놓기 시작했다.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역대 한국미술 경매 최고가 ‘우주’(1971) 등의 전면점화는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예술을 이루기 위해 그가 끝없이 화풍을 고민하고 실험을 한 결과였다.


반면 김환기와 함께 한국 최초 추상미술 그룹인 ‘신(新)사실파’를 결성했던 또 한 명의 거장 유영국(1916~2002)은 한국적인 예술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한국인으로서 세상 그 누구도 그리지 못했던 그림을 창조한다면 그게 바로 한국적인 그림이 되지 않겠는가?"


유영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추상만을 탐구했고, 특히 산을 반복해서 그렸다. 이렇게 외길을 판 끝에, 빛이 충만하게 넘쳐 흐르는 색채와 기하학적 형태로 산과 기타 자연의 정수를 꿰뚫는 그림을 그려냈다. 유영국의 말대로 세상에 없는 그만의 그림으로서 점차 국제적인 관심도 받고 있다.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것을 의식적으로 추구한 김환기, 한국인이면서 독창적이라면 그게 한국적이라면서 외길을 간 유영국, 이 둘은 모두 뛰어난 예술적 성취를 거뒀다. 그러니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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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30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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