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순수하게 성실했던 한국 추상미술의 대가 유영국

2022.09.22.I한경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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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예술」저자 윤혜정

한국의 1세대 서양화가이자 김환기와 함께 추상미술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유영국의 하루는 지극히 단순했다. 아침 여덟 시가 되면 어김없이 일곱평 남짓한 작업실로 향했고 점심식사 후 다시 저녁까지 작업만 하는 식이었는데, 그나마도 작품 한 점을 몇 달에 걸쳐 완성했다. 특별할 것 없는 그의 일과는 정제된 삶을 대변하는 동시에 이와 대조를 이룬다.

1916년에 태어난 유영국은 일본으로 미술 유학을 갔다. 그는 한 명의 시대인으로서 국가의 상실, 참담한 전쟁, 남북의 분단, 이데올로기의 갈등 등 갈기갈기 찢겨 피투성이가 된 근대사를 생의 한가운데서 고스란히 겪어 냈다. 동시에 한 명의 작가로서는 낭만주의니 초현실주의니 하는 전형적인 논쟁도, 제대로 된 미술사학자도 존재하지 않는 미술 주변국에서 스스로를 작가로 곧추세우기 위해 분투했다.

추상의 사전적 의미가 “여러 사물이나 개념에서 공통되는 특성이나 속성 따위를 추출하여 파악하는 작용”이라면, 유영국에게 그 공통의 대상이자 개념은 바로 산이었다. 그는 산을 비롯한 한국의 자연을 점·선·면·색 등 그림의 기본 요소로 환원하면서 ‘색면추상’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삼각형 형태로 단순화된 산, 원으로 표현된 빛, 직선의 나무 같은 기하학적 형태들은 순도 높은 색을 입은 채 밝음과 어둠, 절망과 희망, 구속과 해방 같은 상징성을 얻는다.

유영국에게 산을 그린다는 것은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를, 그리고 그림을 열망했던 삶 자체를 추상화한 결과물이었다. 조형적·기하학적 요소에서 출발한 그의 추상은 지금까지도 “자연의 관찰과 자기 탐구로 추출한 가장 순수한 추상의 세계를 펼쳐 보인 작가”라는 평을 이끌어낸다. 그가 구현한 선과 면의 질서, 색의 조합은 1916년에 태어난 화가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시대적이다.

“산은 내 앞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라는 명언을 남긴 유영국이 그린 산은 실재하는 산이 아니라 그의 마음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관념 안에 맥락 없이 덩그러니 갇힌 산이 아니라, 자신의 고단한 인생과 강퍅한 시대적 상황, 미술에 대한 열정과 현실의 한계 등이 치열히 충돌하고 갈등하다가 마침내 조화를 이루어 영원히 살아 있는 산이었다. “산을 그리다 보면 그 속에 굽이굽이 길이 있다. 꼭 나의 인생 같다. 내 그림 속 산에는 여러 형상의 삶이 숨겨져 있다.” 작가의 자아성찰적 소회는 그의 추상 기법이 세상을 해석하고 살아 내는 고유한 논리를 창조하는 과정임을 실감하게 한다.

오랫동안 유영국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다른 한국의 근대 작가들이나 해외 미술가들에 비해 ‘아는 사람들만 아는 좋은 미술가’로 통했다. 방탄소년단의 RM이 좋아하는 작가로 그를 꼽고 이건희 컬렉션의 핵심 작품으로 그의 그림이 언급되면서 지난 몇 년 사이에 유영국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함께 높아졌지만, 그가 미술계에 존재해 온 시간이나 기여한 정도를 생각하면 아직도 그의 인지도는 턱없이 낮다.

그도 그럴 것이 당대 평론가들이 기술한 바에 따르면 유영국은 “이렇다 할 장식도, 수사도, 기교도 없이 과묵하게 살아온 작가” 혹은 “수도원의 수사”였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에게서는 세상이 흔히 ‘천재 화가’에게 기대하는 문학적 신화나 낭만적 기행담을 찾아볼 수 없다.

가장이었던 예술가는 생계를 책임지며 틈틈이 그림을 그리다가, 1964년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서야 생의 첫 개인전을 선보일 수 있었다. 예상하겠지만 그에게는 미술 제도에 편승해 출세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었다. 당시 구태의 상징이었던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에 반대하는 전시에 참가하기 위해, 그리고 이제라도 작업에 매진하고 싶은 마음에 비해 현실적으로 시간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유명 미술대학 교수직을 과감히 포기했다. 그는 일평생 미술계든 주류 화단이든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고립함으로써 작업에 매진했다.

이제 막 붓을 든 신인 화가처럼 평생을 산 유영국은 2002년 작고할 때까지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끝내 붓을 놓지 않았다. 어느 대상을 오래 바라보고 끝까지 생각한 사람의 웅숭깊은 마음으로, 세상의 인정과 찬사에 연연하는 대신 삶과 예술을 자기의지대로 끌고 나가려고 고요히 노력한 사람만이 완성할 수 있는 세계를 이루었다.

유영국에게 자연을 그린다는 것은 그것을 구현하는 것, 즉 자기 자신을 바쳐서 자연을 이해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묵묵한 노동자처럼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면, 그저 예술가로서만 살고자 했다면 그의 그림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렇게 곡진하게 다가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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