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서 만나요, 이중섭·박수근 명작

2022.11.01.I경남도민일보
한국 근현대 미술사 거장 40명 주요 작품 60점
작가별 예술세계 정점에 이른 결과물 한자리에
올해 지역 순회전 개최지 유치로 경남서 선보여

경남도립미술관이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 영원한 유산’을 지난달 28일부터 열고 있습니다. 전시 첫날 768명이 방문했고, 28~30일 주말을 포함한 3일간 관람객 3111명이 도립미술관을 찾았습니다. 광주에 이어 경남이 전국에서 두 번째로 특별전 개최지가 되었는데요. 미술 애호가를 비롯한 시민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특별전을 세 차례에 걸쳐 다룹니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 주요 작품과 경남 출신 작가 작품을 살펴보고, 지역 순회전 등을 짚어 봅니다.

개막일인 지난 28일 경남도립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전시 해설을 듣고 있다. 전시 해설은 오전 11시와 오후 3시 두 차례 진행된다. /박정연 기자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건희 컬렉션 지역 순회전 중 하나로, 각 지역별로 서로 다른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 2020년 10월 삼성그룹이 이건희 회장 타계 이후 수집한 작품 2만 30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했다. 지난해 7월 서울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이 최초로 열렸고, 올해 지역 순회전 첫 개최지에 경남·부산·광주가 선정됐다.

경남 특별전은 193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80여 년의 한국 근·현대미술을 아우르며 한국미술사를 대변할 수 있는 거장 40여 명의 한국화·회화·조각 60점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각 작품은 작가별 예술세계 정점을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끈다. 도립미술관 학예팀 추천을 받아 우선 눈여겨볼 작품 5점을 소개한다.

◇이중섭 ‘가족’(1950년대) = 이중섭(1916~1956)은 천진한 성향과 작가 정신으로 많은 일화를 남겨 한국 미술사에서 신화적 화가다. 전위적인 경향에 이끌려 자유로운 분위기의 일본 문화학원에서 유학했으며, 재학 당시 독립전과 자유전 등에 출품하며 화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귀국 후 한국전쟁 발발로 피란 생활을 하다가 아내와 자식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홀로 남아 통영·대구 등을 전전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가족과의 이별·그리움·재회 소망을 예술로 승화해 작품을 제작했다.

이중섭은 ‘아이들’, ‘소’, ‘닭’ 등의 소재와 자신과 가족 상황 등 자전적인 주제를 많이 다루었으며 단순한 선과 형태로 대상을 초현실적으로 표현했다. 경남도립미술관 특별전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 ‘가족’에 등장하는 남녀와 두 어린이는 이중섭 가족을 연상시킨다. 거의 나체로 보이는 인물들은 행복한 미소를 띠고 서로 바라보며 손을 뻗어 보듬고 있다. 서로 신체를 접촉하고 있는 모습은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인데, 가족과 따로 사는 불안한 그의 심리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박수근 ‘나무아래’(1960년대) = 미석(美石) 박수근(1914~1965)은 전쟁 후 황폐해진 땅에서 소박하지만 끈질기게 하루하루를 살아간 당시 서민 삶의 모습을 진실되고 숭고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는다. 전문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던 그는 같은 소재를 반복적으로 그리며 점차 구도와 세부묘사, 색채와 질감을 다듬어 나갔다. 그는 중성적인 색채와 투박한 질감, 질박한 선묘 등 특유 기법으로 농가의 평범한 일상 풍경을 담았다.
커다란 나무를 중심으로 왼쪽 아래에는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는 여인, 오른쪽 아래에는 휴식을 취하는 듯 보이는 두 여인이 묘사되어 있다. 여인과 나무는 단순한 형태와 굵은 윤곽선으로 묘사하고 갈색조의 색감과 거친 질감이 강조되어 완숙기에 접어든 작가 특유의 화풍을 잘 보여준다. 우뚝 선 나무에서 뻗어 나온 잔가지들, 거기서 자라나는 옅은 초록 잎은 삶을 이어가려는 단단한 의지와 희망을 읽을 수 있다.

◇변관식 ‘금강산 구룡폭’(1960년대) = 황해도 옹진 출신 소정(小亭) 변관식(1899~1976)은 실경 사생과 전통적인 기법을 발전시킨 ‘소정 양식’을 완성해 현대적 산수화를 선구한 한국 화단의 대표적 산수화가다.

그의 작품 ‘금강산 구룡폭’은 해방 전 수차례 금강산을 오가며 봤던 구룡폭포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변관식은 일제 말기 은둔하면서 금강산 풍경을 세세하게 스케치했는데, 해방 후 분단으로 인해 더는 금강산에 갈 수 없게 되자 금강산을 더욱 부지런히 화폭에 담았다. 대담한 수직 구도와 사생을 바탕으로 산세·폭포·바위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하단부의 작은 인물들의 시선을 위로 두어 웅장하고 역동적인 금강산의 경이로움을 전한다.

◇오지호 ‘항구풍경’(1970년) = 오지호(1905~1982)는 서구 인상주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전시켜 ‘한국적 인상주의’ 선구자로 불린다. 밝은 색채로 우리나라 특유의 맑은 대기와 자연 풍경의 청명함을 극대화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후기에 이르면 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산·들판·설경 등 풍경과 화초· 과일 등 사물을 그렸다.

‘항구’는 오지호 작품에서 자유를 상징하는 장소로 자주 등장한다. 그는 항구에서 완곡한 곡선형의 배와 그런 배들이 떠날 수 있도록 끝없이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며 영감을 얻었다. 이 작품은 대형 선박들이 정박해있는 호남의 큰 항구의 포구를 그린 것이다. 세밀한 묘사보다는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의 물결과 선체의 순간적인 모습을 포착해 빠른 붓질로 표현했다.

◇유영국 ‘작품’(1973년) = 유영국(1916~2002)은 유학시절 접한 기하학적 추상에서 벗어나 기본 조형요소를 중심으로 구축된 자연 추상이라는 독자적인 추상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한편, 1960년대 초부터 한결같이 산을 모티브로 삼았다. 그에게 산은 자연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의 원형으로서 일생 무수한 구도·색·질감 등 다양한 요소를 끝없이 탐구하는 대상으로 기능을 한다.

첫 개인전을 열었던 1964년을 기점으로 유영국은 모든 외부 활동을 중단하고 작고할 때까지 2년 주기의 개인전을 꾸준히 개최하며 개인 작업에 몰입한다. 이때부터 유영국은 굉장한 집중력과 집요한 실험정신으로 예술세계를 확장한다. ‘작품’은 바로 그 전환기 작품이다. 정방형의 화면에 삼원색을 기반으로 강렬한 색채들의 미묘한 변주를 통해 형태감과 깊이감을 형성하고 있는 유영국 추상 미학의 절정을 보여준다.

△관람료 무료 △전시기간 내년 1월 25일까지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 △연장개장 수·토 오후 8시까지 △전시해설 오전 11시·오후 3시 △문의 055-254-4600.

/박정연 기자

*기사 다시보기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