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인왕제색도’ 이건희 기증 덕분에 스토리 덧씌우다

2023.01.15I신동아
● 이건희 컬렉션이란 이유로 인기 끄는 인왕제색도
● 명작 중 명작 반열 오르려면 ‘지금 이곳’ 스토리 필요
● 1936년 올림픽 마라톤 떠올리게 하는 손기정 기증 청동 투구
● BTS RM 방문해 ‘핫플’로 떠오른 대구미술관 ‘산’ 전시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국보로 지정된 ‘인왕제색도’는 멋진 그림이지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그림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좀 어려운 그림이다. 깊은 맛이 천천히 우러나는 묵직한 그림이라서, 단박에 확 빨려들기는 어렵다. 정선의 많은 그림이 그러하듯 이 그림 또한 깊이 생각하면서 감상해야 한다. 물론 고미술 마니아나 전문가들은 이 그림을 주목해 왔다. 그림의 기법이나 분위기, 정선의 내면이나 창작 스토리 등이 조금씩 알려졌지만 접근이 어려운 그림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요새 이 그림을 호명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2021년 4월부터다. 온갖 뉴스와 블로그에 ‘인왕제색도’가 언급되고 있다. 어둑한 조명 아래, 짙은 수묵의 ‘인왕제색도’를 감상하는 모습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최근 1, 2년만큼 이 그림이 빈번히 호명된 적은 없다. ‘인왕제색도’가 그야말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것이다. 이런 가정을 해본다. 100년이나 200년 뒤 ‘인왕제색도’의 내력을 쓴다면 그래서 인왕제색도 인기의 결정적 순간을 추적해 본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2021년과 2022년을 꼽을 것이다.



인왕제색도의 변신

‘인왕제색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이건희 컬렉션의 하나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 걸려 있었다(늘 전시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작품이 변한 것도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왕제색도’는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 그런데 예전에는 이 작품에 열광하지 않던 사람들이 지금은 열광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전과 후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 변화는 이건희 컬렉션이라는 사실에서 비롯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작 2만3000여 점 가운데 하나인 덕분이다.

미술품이나 문화재가 대중의 인기를 얻는 과정을 추적해보면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여기에는 기본 전제가 있어야 한다. 해당 작품의 수준이 높아야 한다는 사실. 작품 자체가 엉성하다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 어렵다. 어쨌든 이런 전제가 충족된다면, 특정 작품이 인기를 얻어가는 과정에서 미술 내적인 측면 외에 외적인 상황이나 분위기가 많이 작용한다는 말이다. ‘인왕제색도’의 경우, 외적 상황의 핵심은 ‘기증’이다.

이건희 컬렉션에는 정선의 ‘금강전도(金剛全圖)’도 있다. 이 또한 국보이고 이건희 컬렉션의 대표작이다. 그런데 ‘금강전도’는 기증작에 포함되지 않았고, 여전히 삼성미술관 리움에 있다. ‘인왕제색도’가 기증작 목록에서 빠지고 대신 ‘금강전도’가 들어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인왕제색도’ 열풍이 아니라 ‘금강전도’ 열풍이 불었을 것이다. 언론은 ‘금강전도’를 앞세워 보도했을 것이고, 사람들은 그런 ‘금강전도’에 열심히 화답했을 것이다.



이것이 기증의 마력이다. 누군가 자신이 소장한 예술품을 어느 기관(또는 누군가)에 기증한다는 것은 대부분 감동을 준다. 그러니 인구에 회자될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 기증자가 유명한 사람이거나 사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감동의 전파력은 더욱 강할 것이다. 기증받는 기관(또는 개인)에 각별한 사연이 있다면 이 또한 큰 감동을 줄 것이고 사람들이 화제로 삼을 것이다.

2021년 4월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이 극명한 사례다. 삼성과 이건희 회장(1942~2020)의 인지도와 화제성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런 이건희 컬렉션을 수십 점, 수백 점이 아니라 2만3000여 점을 기증했다는 사실, 거기 국보와 보물이 즐비하고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와 샤갈, 르누아르, 모네, 피카소 등 유럽 화가 작품까지 포함됐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기증을 두고 사람들은 ‘세기의 기증’이라고 불렀다. 이 엄청난 사건에서 ‘인왕제색도’가 가장 두드러진 간판 작품으로 꼽혔으니, 사람들이 이 작품에 주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정선이 언제 왜 이 그림을 그렸는지는 나중 문제였다. 이건희 기증작 2만3000여 점의 간판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생산자 관점에서 수용자 관점으로

‘인왕제색도’가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서 100년, 200년이 흘렀다고 가정해 보자. 후대의 사람들은 ‘인왕제색도’의 내력을 살펴보며 2021년 4월 이건희 컬렉션 기증을 매우 중요한 순간으로 기억할 것이다. 어찌 보면, 1751년 정선이 그림을 그린 순간보다 더 중요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게 무슨 말이냐. 특정 미술품(문화재)의 내력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작품이 탄생한 순간(작가가 그림을 그린 순간) 아니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생산자(제작자) 시각에서 보면 그 말이 옳지만 생각을 바꾸어 수용자(소비자, 향유자) 시각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여기서 잠시 생산자의 관점과 수용자의 관점을 생각해 보자. 생산자의 관점은 △누가 왜 그 작품을 창작했는지 △작품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자 했는지 △창작 당시 시대 상황이나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등에 주목한다.

수용자의 관점은 다르다. 수용자 관점은 △후대의 어떤 사람들이 그 작품을 수집했는지 △어느 계층 사람들이 그 작품을 열심히 감상하고 즐겼는지 △인기를 끈 시대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등에 주목한다. 작가의 창작 못지않게 수용자의 소비와 향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 같은 수용자 관점은 문학에서 말하는 ‘수용미학’과 통한다. 후대 사람들이 그 미술품(문화재)을 어떻게 향유하고 소비하는지에 따라 그 작품의 가치와 의미가 형성된다는 관점이다.

생산자의 시각이 아니라 수용자의 시각으로 보면, 정선이 작품을 완성한 순간 못지않게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게 된 순간이나 감동받게 된 과정과 계기가 중요해진다. 물론 정선은 당대 최고 화가였고, 당시에도 인기가 높았다. 정선의 집은 그림을 주문하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렇기에 ‘인왕제색도’는 18세기 당대에도 어느 정도 유명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우리 시대 ‘인왕제색도’의 인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의 인기는 18세기 창작 상황보다도 2021년 이건희 컬렉션 기증에 더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인왕제색도’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있는데, 그것을 수용하는 대중의 인식이 바뀐 것이다. 기증 작품에 포함되지 않고 그냥 삼성미술관 리움에 걸려 있었다면 이런 인기는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증의 힘이다.



이건희, BTS RM, 유영국

2021년 4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유족은 컬렉션 가운데 2만3000여 점을 우리 사회에 기증했다. 일단 수량이 어마어마한 데다 기증한 작품이 모두 수준급이다. 그런데 놀랄 일이 하나 더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국립 기관에만 기증한 것이 아니라 지방 공립 미술관(대구미술관, 양구 박수근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에도 컬렉션을 넘겼다.

세간의 관심 속에 기증 두 달 뒤인 2021년 6월부터 기증작의 일부가 선보이기 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 전시에는 수많은 사람이 몰렸고, 입장권 예매는 “광(狂)클릭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치열했다. 현장에서 한두 시간 기다리는 것은 예사였다.

2021년 6월 대구미술관 전시에는 BTS의 멤버 RM이 찾아와 화제가 됐다. 미술 마니아이자 컬렉터인 RM은 당시 유영국(1916~2002)의 ‘산’ 연작을 감상하는 모습을 촬영해 SNS에 올렸다. 유영국의 ‘산’ 연작도 이건희 컬렉션 기증작 가운데 하나다. RM의 사진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대구미술관 전시실의 사진 촬영 지점은 RM존이라 불리면서 BTS 팬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하나의 성지가 됐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RM과 같은 위치에서 촬영한 사진이 수두룩하다.

유영국의 추상화 ‘산’ 연작은 매력적인 작품이다. 그래서 마니아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RM의 사진은 그 유명세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사진 속에서 RM은 유영국의 ‘산’ 연작 사이에서 작품을 응시하고 있다. 구도도 좋고 색감도 좋다. 그 사진만 봐도 유영국의 ‘산’에 빠져들 것 같다. 유영국의 추상화 ‘산’은 이렇게 대중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자리 잡았다. RM은 그해 10월 전남도립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 전시도 찾았고, 그곳에서도 인증샷을 찍었다. 그곳 또한 인기 장소가 됐다.

2022년 가을부터는 이건희 컬렉션 기증작 지방 순회전이 시작됐다. 기증작이 워낙 많다 보니 여러 세트의 전시 프로그램을 기획해 전국 곳곳의 박물관, 미술관에서 동시다발로 순회전이 열리고 있다. 순회전은 2024년까지 일정이 잡혀 있다. 2022년엔 부산시립미술관·경남도립미술관에서 전시를 시작했고, 2023년엔 대구시립미술관·울산시립미술관·전남도립미술관·대전시립미술관·경기도립미술관·국립대구박물관·국립청주박물관에서 열린다. 2024년엔 전북도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충남도립미술관으로 이어진다.



기증의 미학

2만3000여 점이나 기증했음에도 삼성미술관 리움에 남아 있는 이건희 컬렉션은 여전히 방대하다. 기증한 작품 수보다 더 많을 것이다. 겸재 정선의 역작 ‘금강전도’도 리움에 있다. 그런데도 리움에 가는 사람보다 기증 전시를 보러 가는 사람이 더 많다. 왜 그럴까.

기증은 미술품이나 문화재를 수용하고 향유하고 기억하는 과정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미술품 컬렉션이나 문화재 컬렉션을 기증하는 것은 미술품과 문화재가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진입한 것이다. 아울러 여기에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축적하는 과정이다. 그 미술품이나 문화재를 소장했던 컬렉터의 비밀스러운 스토리까지 우리는 함께 기억하고 공유하고 향유하게 된다. 그 감동과 여운은 미술품이나 문화재의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선다. 물론 기증 이전에 이미 박물관, 미술관을 통해 전시하는 경우도 있으나 기증은 좀 더 적극적으로 세상과 공유하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다.

시각적으로 아름답다고 해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명작으로 대접받는 것은 아니다. 명작은 그 이상이어야 한다. 이때 효과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기증과 같은 감동 스토리다. 그 스토리는 대중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많은 사람이 이건희 컬렉션 전시를 보러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얼굴무늬수막새, 기마인물형뿔잔, 백자철화끈무늬병

‘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얼굴무늬수막새(보물)는 국립경주박물관의 인기 유물이다. 이 수막새는 일본인 의사 컬렉터 다나카 도시노부(1905~1993)가 1934년 수집해 1940년경 일본으로 가져갔다. 1972년에 다나가카 이를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하며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국경을 넘나든 특별한 사연이 있는 셈이다.


삼국시대 도기기마인물형뿔잔(국보)도 국립경주박물관의 인기 명품이다. 이 뿔잔은 대구에서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일하던 컬렉터 이양선(1916~1999)이 열정적으로 수집한 고고 유물 가운데 하나다. 그는 1985년 국립경주박물관에 이 뿔잔을 기증했고, 그때부터 많은 사람이 그 매력을 직접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다나카 도시노부와 이양선의 기증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멋진 문화재를 제대로 만나고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조선시대 철화백자 가운데 보물로 지정된 백자철화끈무늬병이 있다. 이 도자기는 이례적으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무심한 듯 자유분방하고 대범한 듯 담백한 흑갈색 끈 무늬에 매료된 사람들이다. 이 백자 한 점이 이렇게 유명해진 것은 30년도 되지 않았다. 그 대중적 인기의 중요한 계기가 된 사건은 1995년 기증이었다. 당시 이 백자를 소장한 사람은 한국플라스틱이라는 기업의 서재식 회장이었다.

1995년이면 한국플라스틱이 골드륨이라고 하는 바닥장판으로 대박을 터뜨릴 때였고 서 회장은 광고에 직접 출연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국에서 CEO가 해당 기업의 광고에 직업 출연한 첫 사례라고 한다. 그런 기업인이 국립중앙박물관에 특이하고 매력적인 백자를 기증했다고 하니, 세간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백자를 상설 전시했고, 사람들은 그 매력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손기정 투구 숨겨진 스토리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손기정 청동 투구가 있다. 고대 로마의 검투사 영화에 나올 법한 이국적인 모양의 청동 투구. 이것은 마라토너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받은 부상이다. 베를린 올림픽 당시엔 마라톤 우승자에게 그리스 유물을 부상으로 주는 것이 관행이었다. 마라톤이 그리스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리스의 한 신문사가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를 부상으로 내놓았다. 기원전 6세기경 제작된 투구로, 1875년 독일 고고학 발굴단이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아마추어 선수에겐 메달 이외에 어떠한 부상도 줄 수 없다”며 손기정에게 투구를 전달하지 않았다. 조선을 식민 지배한 일제는 이 투구에 관심이 없었다. 상황이 이러했기에 손기정은 아무것도 모른 채 조선으로 돌아왔다.

손기정이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70년대다. 수소문 끝에 청동 투구가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투구를 건네달라고 요청했으나 독일 측은 이를 거부했지만 애초에 투구를 제공했던 그리스의 신문사와 그리스 올림픽위원회의 지원에 힘입어 1986년 청동 투구를 찾아왔다. 투구는 이듬해인 1987년 보물로 지정됐고, 손기정은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이를 기증했다.

누군가는 일장기 말소 사건을 통해, 누군가는 결승선 골인 장면의 사진을 통해 식민지 청년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을 기억할 것이다. 최근엔 이 청동 투구를 통해 마라톤 우승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손기정의 기증 덕분이다.



결정적 순간

다시 정선의 ‘인왕제색도’로 돌아가 보자. ‘이건희 컬렉션 기증’이라는 사건은 ‘인왕제색도’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인왕제색도’ 앞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이름으로만 들었던 이 작품을 직접 경험하고 기억하도록 만든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2021년과 2022년은 ‘인왕제색도’에 매우 중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인왕제색도’가 인기를 구가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기증의 미학이다. 이건희 컬렉션 열풍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광표
● 1965년 충남 예산 출생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 문화유산학협동과정 졸업(박사)
● 前 동아일보 논설위원
● 저서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박물관’ ‘한국의 국보’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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