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하다…강렬하다!…대구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지역화가 6인 집중조명

2023.05.19.I영남일보
대구 초기 서양화단 주도한 서동진 이어
누드작품 주제 대담하게 표현한 서진달 등
색채 대비·재료·기법 독특한 화풍 특징
한국 미술계에 끼친 영향력 볼 수 있어

오는 5월28일까지 대구미술관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웰컴 홈: 개화(開花)' 특별전은 서양화 도입 이후 한국미술계가 변화한 192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 근·현대미술 90년을 아우른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작품에는 고향을 배려해 선정된 명작들이 많다. 이번 특별전에서도 한국 미술계의 발전과정 속에서 지역 출신 화가들의 역할과 영향력을 살펴 볼 수 있다. 한국 근대미술의 별과 같은 작가 이인성과 이쾌대를 비롯해 대구의 초기 서양화단을 형성했던 서동진, 서진달이 바로 그들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로의 전환기에 추상조각의 거두 김종영, 한국적 추상화의 유영국, 1세대 추상작가 문학진, 신형상주의의 변종하의 작품이 포함돼 기증작을 통해 한국미술 전반을 두루 섭렵할 수 있게 했다. 이번 주말 만날 수 있는 6명의 지역 출신 작가와 그 대표작을 지면을 통해 살펴 본다.


◆이인성

이인성은 당시 '혜성의 등장' 또는 '천재 화가'라고 불릴 만큼 대구화단에서 이목을 끈 화가다. 기법의 세련화와 더불어 소재, 색채, 분위기 등의 조선 향토색을 표현하고자 했다. 다소 거칠고 대담한 묘사와 단순한 듯한 색채의 자유로운 조화는 이국적인 감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석고상이 있는 풍물'은 노란색 바탕에 붉은색 천을 깔고 여인 상반신의 나체 석고상을 화면 중앙에 놓고 그 아래로 옥수수와 사과, 포도, 마늘 등이 가로로 줄지어 배치되듯 가지런히 놓여 있다. 수직 구도의 안정감과 원색의 강렬한 색채 등 의도적으로 고스란히 남긴 필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서동진

서동진은 당대 미술운동의 결정체였던 향토회(鄕土會)를 이끌며 수채화의 독특한 화풍으로 대구화단의 개성을 수립하고 대구 초기 서양 화단을 주도했다. 시가지 중심의 골목 풍경이나 신식 건물이 즐비하고 변해가는 도시의 거리를 수채화의 감각적인 색채와 시원스러운 필치로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의 작품 '자화상'은 휘문고보를 졸업한 시기에 그린 젊고 패기 있는 모습의 자화상이다. 단정한 차림의 격식 있는 듯함이 느껴지는 이 자화상은 작가가 서양화 입문기에 그린 작품으로, 마치 새로운 시작에 첫발을 내딛는 다부진 표정이 잘 드러나 있다.


◆서진달

서진달은 작품의 주제만 대담하게 강조한 독자적인 누드 작품들을 확립했다. 과감한 여백으로 처리한 부분과 섬세하고 율동적인 여체의 선 표현, 화면 전면에 부각한 구성부터 다소 거칠지만 힘찬 터치와 색의 강렬한 대비, 빛과 그림자를 선명한 색채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마치 거친 면으로 큼직하게 조각하듯 묘사한 명암, 유화의 무게감으로 누른 묵직한 톤의 표현, 중후한 입체감 등이 느껴지며 전체적으로 세부 묘사는 간소하게 생략돼 있다.

'나부입상'은 왼팔을 뒤쪽 허리에 두고 정면으로 서 있는 여인을 당당한 모습으로 그려냈다. 배경과 누드는 동일 색조의 톤으로 조화를 이루지만 단순한 배경과 달리 빛의 선명한 표현으로 신체 전면 가득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변종하

변종하는 형식적으로는 신형상주의를 지향하면서도 풍자와 비판, 서정적이면서도 은유적인 독창적 회화를 구축했다. 그는 1965년을 전후로 표현주의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제와 기법을 보인다. 소재와 기법을 연구하여 요철(凹凸)의 화면 구성과 거기에 스며드는 채색법을 구축해 독특한 조형 어법을 시도하는 방법으로, 회화의 재료와 기법을 확장하고자 했다.

특히 1970년대에는 극도로 단순화한 형상으로 시적인 표현을 보여준 현실 비판적인 우화를, 1980년대에는 꽃·새·나무·달·잠자리 등 친근한 풍경을 간결하고 소박하게 묘사해 주목받았다.

'오리가 있는 풍경'은 간결한 구성의 화면에 유연한 곡선의 물흐름을 느끼듯 떠 있는 오리가 묘사된 풍경이다. 오리의 단순화된 형상은 서정적 분위기를 자아내며, 그 속에서 소박하지만 친근함을 찾을 수 있다.


◆이쾌대

이쾌대는 한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시대인 일제강점기와 6·25전쟁기에 활동하면서 당시 시대적 주제와 정서를 담아낸 예술가다. 전통적인 회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향토적인 주제 혹은 민족의 기상을 형상화한 서사적 회화를 추구했다.

작품 '항구'는 월북 후 그린 작품으로, 당시 대부분 소박한 일상을 주제로 그린 일련의 작품 중 하나다. 리얼리즘을 꽃피웠던 그림과 달리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색감이 어우러진 붓 터치로 표현한, 황혼에 물든 하늘 아래 줄지어 정박해 있는 배들의 풍경은 매우 고요한 느낌을 준다. 이를 통해 오롯이 풍경 그 자체로 전해지는 고전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유영국

유영국은 자연에서 모티프를 가져 온 한국적 추상화의 일가를 이뤘다. 유영국은 경주 사진을 통해 공간을 압축적으로 클로즈업하여 화강암의 거친 선각과 기하학적 구조를 보여주고자 했다. 1960년대부터 70년대 전반까지 점, 선, 면, 형, 색 등의 조형 요소들을 통해 실험적 예술 과정을 보여주었다.

특히 '산' 연작들은 산이라는 자연을 화면의 구조 속에 기하학적 대각선 구조로 거듭해 환원시키고자 했다.

1974년작 '산'은 짙은 파란 하늘 아래 높고 나지막한 산들이 넓게 솟아 있는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검은색에 가까운 산부터 밝은 연두색의 산까지 색채의 다양함이 마치 자연 속 산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듯하여 유기적이면서도 조화로움이 느껴진다.

홍석천기자 hongsc@yeongnam.com
<자료제공 : 대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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