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미술관 6편]한국 추상미술 개척자…'산의 작가' 유영국 화백

2023.10.13.IEBS 뉴스
[EBS 뉴스12]

교과서에 담긴 미술작품의 뒷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어보는, 교과서 속 미술관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산의 작가죠.

유영국 화백의 이야기 알아봅니다.

최이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있는 유영국 화백의 <산>입니다.

커다란 캔버스에 표현된 단순화된 산의 모형, 초록색과 붉은색의 전통적인 색채감으로 숭고한 자연을 담아냈습니다.

유 화백의 대표작은 기하학적 구성에, 한국의 산을 개성있게 구현한 산 시리즈입니다.

인터뷰: 이태호 석좌교수 / 명지대학교
"고구려 고분벽화부터 고려 불화나 조선시대 불화나 우리 조선시대 민화, 궁중화 이런 것들을 보면 대체로 초록색하고 빨강색의 대비 효과를 잘 살린 게 특징이라고 보거든요. 추상적으로 요약한 작가가 유영국이다."

유영국 화백은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났습니다.

울진은 조선 후기부터 어업이 주된 경제적 기반이었던 지역으로 부산과 강원도, 지역을 잇는 보부상들의 거점이었습니다.

해상어업의 지주 집안에서 자란 유 화백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 유학시절 경성 제2고보를 다니던 중 일본인 미술교사 '사토 구니오'를 통해 화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사토 구니오는 경성제2고보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면서 장욱진과 권옥연 등 한국 근대작가들이 탄생하는데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유 화백은 일본 문화학원 유화과에서 추상미술을 접했지만, 10년 가까이 되는 유학 생활을 접고 귀국해 울진 고기잡이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아버지의 고깃배로 어업을 하던 유영국 화백을 미술계로 다시 이끈 건 김환기 화백입니다.

추상미술의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유영국과 김환기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큰 키에 비슷한 환경, 무엇보다 그림을 사랑했습니다.

동시대에 활동하며, 일본에서 유학했고 한국 추상미술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서해서 자란 김환기의 색에는 서해바다 갯벌처럼 녹색조나 회색조가 섞인 오묘한 빛깔이 나타나고

동해서 자란 유영국의 그림 속 초록과 파랑은 동해 바다같이 투명한 느낌이 강합니다.

두 거장은 서로를 의지하며 길을 만들어갔습니다.

김환기 화백의 제안으로 유 화백은 본격적인 서울 생활을 시작했고, 곧, 서울대 응용미술과 교수로 임용됩니다.

이때 김환기, 이규상 작가와 신사실파도 결성했습니다.

신사실파는 순수한 조형이념을 추구하는 그림 동인으로, 한국적 추상미술의 효시가 되는 단체이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인 전업작가 생활도 잠시,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유영국 화백은 고향으로 돌아가, 폐허가 된 양조장을 수리해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잘나가는 사업가로 변신한 뒤에도 그의 진심은 그림에 있었습니다.

"나는 금산도 싫고 금논도 싫다. 나는 화가가 될 것이다"

그리고 1968년, 산 그림 200점을 들고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왜 산이냐고 묻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떠난지 오래된 고향 울진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그리고 산에는 뭐든지 있다. 봉우리,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면, 다채로운 색"
- 서적 <이건희·홍라희 컬렉션>, 손영옥 저

인터뷰: 유진 /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 장남
"울진에도 산이 많고, 강원도에 산도 많고 우리나라 전부 국토의 70퍼센트가 산 아닙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래서 그 바뀌는 데서 늘 새로운 소재가 있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그리고 똑같은 산도 갈 때마다 다른 것이, 인생 길하고 참 비슷하다는 생각도 하셨대요."

색들을 두껍게 쌓기도 하고, 다시 뜯어내기도 하면서, 유화백은 그림속에서 자연의 위엄과 위대함을 표현했습니다.

"마을에서 평탄한 길을 걸어 산모퉁이 하나를 돌아가면 끝없는 바다였다. 바다를 둘러싸고 첩첩이 헐벗은 산과 옷 입은 산들이 보였고 그 산은 아침, 저녁, 봄, 여름, 가을, 겨울 무수히 변했다"

그는 그렇게 평생, 산을 그렸습니다.

인터뷰: 유진 /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 장남
"(몸이 안좋으실때) "저 아버님 좀 쉬어가면서 이렇게 일하시는 게 어떠냐" (했더니) 화를 벌컥 내시면서 화가가 그림 그리다 죽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고 하시더라고요."

"산에는 모든 것이 담겼다"수많은 계절을 지나도록 우리 곁에 우직하게 남아있는 산처럼, 한국의 몬드리안, 유영국 화백의 산도 자연의 숭고함을 품고, 우리 곁에 남았습니다.

EBS 뉴스 최이현입니다.

최이현 기자tototo1@ebs.co.kr / EB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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