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ALENDAR] 자연과 인간의 공존,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다

2023.11.07.I중앙일보
▶호암미술관 소장품전 '자연/스럽게'
호암미술관의 백색 공간에 푸른 반투명 유리 덩어리들이 고즈넉하게 놓여 있다. 얼음 덩어리 같은 푸른 조각들이 새하얀 공간에 놓여있으니 마치 극지방의 풍경을 보는 것 같다. 실제로 이 작품 ‘열 개의 액체 사건’은 미국 작가 로니 혼이 아이슬란드의 빙하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다.

로니 혼의 조각작품 너머 벽면에는 35점의 사진이 일렬로 걸려 있다. 스칸디나비아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이 아이슬란드 고원의 남쪽 계곡 도마달루를 12시간에 걸쳐 찍은 숭엄한 느낌의 작품 ‘도마달루 일광 연작(북쪽)’(2006)이다.

이들은 모두 호암미술관의 소장품이다. 개관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동시대미술 소장품전인데, 자연을 끌어들인 정원 희원에 둘러싸인 미술관의 정체성을 반영해서 ‘자연’을 테마로 하고 있다. 국내외 작가 5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이번 전시는 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고찰하는 현대미술 작품으로 구성됐다. ‘자연/스럽게’ 전시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다섯 작가의 각각 다른 제안이다”라고 설명했다.

전시작 중 한국 작가 김수자의 ‘대지-물-불-공기’(2009-2010)는 빙하부터 활화산에 이르기까지 대자연을 통해 보는 기본요소 흙·물·불·바람과 인간의 유대를 다룬 영상 작품이다. 태국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무제2020(정물) 연작’(2023)은 지구상에서 사라진 동물 20종을 알루미늄 판에 새긴 작품이고, 한국 작가 문경원의 ‘프라미스 파크 서울’(2021)은 공원이 나타내는 도시의 역사를 패턴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기간 10월 10일~2024년 1월 21일 장소 용인 호암미술관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한국의 추상미술 하면 대개 김환기의 점화와 단색화부터 떠올리게 된다. 이들은 모두 기하학적 추상미술과는 거리가 있다. 김환기의 경우, 초기에는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탐구했으나 그의 절정기로 여겨지는 뉴욕시대 전면점화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박서보 등 단색화 대가들은 초기에 미국 추상표현주의와 궤를 같이 하는 유럽의 아르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는 기하학적 추상을 거부하고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하는 추상이다.

그래서 국립현대미술관은 "기하학적 추상이 한국 미술사에서 독자적 이론이나 미술운동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영국 등 기하학적 추상의 흐름이 있어 왔기에 이를 재조명하는 전시를 11월 중 개최한다.

유영국은 그의 기하학적 추상 미학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내가 대상으로 한 것은 자연이었고 (…) 그것은 어떤 구체적인 대상물로서의 자연이 아니고 선이나 면이나 색채, 그리고 그런 선과 면과 색채들로 구성된 비구상적인 형태로서의 자연이다.”

미술관은 “1920~1930년대의 문학과 디자인, 1950년대의 반추상 작품으로부터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기하학적 추상미술과 연계되는 작품들을 통시적, 공시적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참여작가는 김환기, 유영국, 변영원, 서승원, 이승조, 한묵, 홍승혜, 강서경, 전현선 등이다.

기간 11월 16일~2024년 5월 19일 장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구본창 개인전 720자
‘백자’ 연작 등 예술사진과 영화 ‘취화선’ 포스터 등 상업사진 양쪽에서 모두 성공한 드문 작가인 구본창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다.

서울시립미술관이 2024년 사진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야심차게 개최하는 전시로, 구 작가의 1980년대 독일 유학 시절부터 올해 첫 선을 보인 ‘황금’ 연작까지 다양한 연작의 대표작을 선별 전시하며, 아카이브까지 총망라한다.

“존재와 부재, 채움과 비움, 그와 관련한 시간성,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 등에 관심이 많다”(2019년 중앙SUNDAY 인터뷰)고 작가는 밝힌 바 있는데, 이것은 그의 여러 연작을 관통하는 일관된 테마이다. 먼지 낀 오래된 회벽을 마치 구름 낀 하늘과 수평선의 태고적 풍경처럼 찍은 ‘시간의 초상’ 연작, 쓰다 남은 비누를 골동품 보석처럼 찍은 ’비누’ 연작, 그리고 영국의 노(老) 도예가 옆에 놓인 조선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한 ‘백자’ 연작이 이를 특히 잘 보여준다.

서울시립미술관에 따르면, 구본창은 독일에서 귀국해 한국 현대사진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평가 받는 1988년 워커힐미술관 단체전 ‘사진―새시좌전’을 기획하며 당시 새로운 감각과 실험적 방법론을 시도하던 작가들을 통해 사진계에 큰 영향을 미친 바 있다. 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사진이 미술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작가의 미술사적 위치를 자리매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기간 12월 14일~2024년 3월 10일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박서보 개인전
지난 10월 14일 별세한 단색화 거장 박서보(1931-2023)가 생전에 시작했던 마지막 개인전이 부산 조현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그가 2020년을 기점으로 다시 시작한 연작이자 최후의 연작이 된 후기 연필 묘법을 국내 최초로 소개하는 전시다. 밝은 파스텔 톤 바탕에 연필 선이 리듬감 있게 반복되는 작품들로서, 이에 대해 작가는 “무목적성으로 무한반복하며 나를 비우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세라믹 묘법 등 총 25점을 선보인다. 박서보 묘법의 강렬한 색감과 입체감 있는 질감을 확대하여 움직이게 한 디지털 작품도 선보이는데, 작가의 손자 박지환이 제작한 것이다.

박 화백은 지난 9월 21-23일 이 전시를 돌아보기 위해 부산을 방문했고 그때 SNS 계정에 가을 바람에 대해 쓰며 "내년에도 이 바람에 귀기울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이라고 썼다. 이것이 고인의 마지막 SNS 글이 되었다.

기간 12월 3일까지 장소 조현화랑 달맞이점 & 해운대점

문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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