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점·선·면… 되짚어 본 '단순함의 세계'

2023.12.04.I경인일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원색·평면성 녹인 회화, 1920~1970년대 풍미
한국 정서 가미된 작품의 역사 엿볼수 있어
색동 만다라 시리즈 등… 내년 5월 19일까지
'오 68-C'·'핵 G-999' 50여년만에 공개 눈길

점과 선, 원과 사각형의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 눈길을 사로잡는 원색의 색채. 화면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회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몬드리안과 칸딘스키, 말레비치와 같은 작가들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받으며, 20세기 현대미술의 주요한 경향이 됐다. 국내에서도 1920~30년대 근대기에 기하학적 추상이 등장했는데, 이후 1960~70년대에는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며 각기 다른 양상으로 존재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기하학적 추상은 앵포르멜(기하학적 추상을 거부하고 미술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전후 유럽의 추상미술)이나 단색화와 같은 추상미술과는 다르게 장식적인 미술 또는 한국적 정서와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관심받지 못했다.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다룬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다. 그동안 변두리에 머물렀던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지닌 독자성과 의미, 역사를 되짚어보며 이들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는 의미 있는 전시이기도 하다.

모두 5개의 섹션으로 이뤄져 있는 전시의 시작에서는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찾았던 극장에서 홍보를 위해 만들었던 영화 주보(전단)와 '제일선', '신인간' 같은 시사종합지 표지들을 볼 수 있다. 추상적 디자인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새로운 이미지가 된 것은 물론, 근대의 혁신적인 이미지와 계몽이념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검은 바탕에 회색빛이 도는 두 줄이 그어져 있는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인 김기림의 '기상도' 표지를 비롯해 '조선과 건축', '중성'의 표지까지 디자인한 시인 이상의 또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

1957년에는 화가·건축가·디자이너의 연합 그룹인 신조형파가 결성되면서 한국전쟁 이후 국가 재건기에 미술과 건축, 디자인의 새 역할을 모색했다. 중요하지만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작가 김충선과 변영원의 작품과 함께 건축가이자 미술에도 관심이 많았던 신조형파의 회원 이상순이 촬영해 가지고 있던 자료들을 기증받으며, 이 시기 신조형파의 활동상을 재구성해볼 수 있다.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하거나 자연이 주는 감성을 나타낸 추상작품들도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에서 발견된다. 김환기와 유영국 같은 1세대 추상미술가들은 자연을 단순한 소재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자연은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담아내는 매개이자 그 자체였다.

유영국의 '산' 연작은 점·선·면의 기본적 요소와 색을 통해 산과 바다와 태양과 같은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하고 추상화했으며, 김환기의 '달'이나 '새벽' 등의 작품은 푸르스름한 달의 색과 정서가 한껏 느껴진다. 전성우의 '색동만다라' 시리즈는 삼각형 모양 속에 한국의 전통적 색감을 녹여내며 다양한 요소가 화면 속에 공존하고 있다.

기하학적 추상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전방위로 퍼져나갔다. 전시의 4번째 섹션은 이러한 기하학적 추상의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 미술관에서 이번 전시를 위해 발굴해낸 의미있는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최명영의 '오(梧) 68-C'는 57년 만에, 이승조의 '핵 G-999' 역시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또 이번 전시를 계기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하게 된 문복철의 '작품 67-102', 윤형근의 '69-E8' 등도 눈여겨 볼만하다. 전시장 사이 통로 공간에는 창작집단 다운라이트&오시선이 이번 전시 출품작들의 패턴에서 착안해 디지털 만화경이라는 키워드로 재해석한 동시대 작품도 전시돼 있다.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에 대한 관심을 한층 더 높여줄 전시는 2024년 5월 19일까지.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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