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서 즐기는 산과 산…이건희·RM도 찜한 그 그림 [요즘 전시]

2023.12.05.I헤럴드경제
고(故) 유영국의 산은 원색의 강렬함
강서경은 보드랍고 따뜻한 치유의 ‘산’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작품을 통해 세상을 여행하는 것.” (알랭 드 보통, ‘불안’ 중)

삭막한 도시 생활에 지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면, 산을 사랑한 작가들을 만나보자. 산에 몰입한 이들의 현재 전시 중인 작품 앞에 서면 고단한 현재를 잊게 된다. 동시에 숭고한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빛과 색채, 더 나아가 질감이 주는 힘을 느낄 수 있다. 그 순간 미술관은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는 진정한 안식처로 변신한다.

실제로 수많은 예술가에게 산은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추상화로 해석한 고(故) 유영국 화백의 산은 낭만적이고 강렬하다. 반면 설치 작품으로 풀어낸 강서경 작가의 산은 포근하고 질박하다. 산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 주는 느낌이 이토록 다른 데는, 산의 능선이 가진 생동하는 기운을 어떻게 받아들였냐는 차이에서 비롯된다.

‘산의 화가’를 꼽자면 한국 추상 미술의 선구자인 고(故) 유영국 화백이 대표적이다. 그는 살아 생전 산을 주제로 한 일관된 작업을 했다. 그에게 산은 흔히 볼 수 있는 주변 풍경이 아닌, 자연의 신비를 오롯이 담은 아름다움의 원형, 그 자체였다. 특히 그가 산에 천착했던 이유에는 절절한 향수 때문이기도 하다. 오래 전 고향인 경북 울진을 떠난 그는 고향에 대한 애틋함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결국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한 그는 200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렬한 색과 함께 선과 면으로 산을 표현했다. 군더더기 없는 구성, 수직·수평의 절제된 균형 감각이 가히 돋보인다. 유영국이 가장 존경한 작가인 몬드리안과 닮았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시에서 엄격한 기하학적 형식을 탈피한 유영국의 ‘산’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5월 19일까지. 그는 이건희 컬렉션 전시와 함께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의 작품 앞 인증샷으로 특히 대중에게 잘 알려진 작가다.

강서경의 ‘산’은 꾸민 데 없이 수수하다. 그의 작품은 현재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진행되는 ‘버들 북 꾀꼬리’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이번에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변화에 맞춰 서로 다른 질감과 온도를 가진 아담한 산을 표현했다. 이 작품도 추상성을 띠는데, 입체적이며 서정적이다. 강서경의 ‘산’ 연작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옛 산수화 속 자연을 거닐며 산책하는 기분이 든다.

강서경은 국내외 동시대 미술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특히 2016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소개된 그의 작품을 보고 해외 미술계가 큰 관심을 보였다. 이후 그는 지난 2018년 미국 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이어 2019년에는 아트바젤에서 ‘발로아즈 예술상’을 받았고, 베네치아비엔날레 본 전시장에도 작품을 설치하며 활발하게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미술계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암 판정을 받는 등 건강에 이상이 생긴 탓이다.

“지난 1년간 암 투병과 출산 등 큰 사건이 겹쳤어요. 예전엔 거대한 추상의 덩어리로 다가왔던 산이 어느 날 제게 살포시 다가와 준 느낌을 받았어요.” 강서경의 마음을 어루만진 사계절의 산은, 그래서 보드랍고 따뜻하다. 작품 높이도 160㎝를 넘기지 않는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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