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여백, 관조와 사유...한국 추상미술을 가늠하다

2023.12.30.I광주일보
전남도립미술관, 3월까지 기증작 매개로 '시적추상'전 열어
김환기, 유영국, 고화음, 오숙환, 이철주, 진유영, 강운, 이인 그림

김환기와 유영국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다. 서구의 추상미술과 달리 한국의 추상미술은 동양적 예술관을 토대로 한다. 자연과 여백, 관조와 같은 사유가 배면에 깔려 있어 깊은 울림을 준다.

한국 추상화의 다채로운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돼 눈길을 끈다. ‘색’과 ‘형’의 비정형적 구성을 통해 ‘조형 시(詩)’를 창안한 작가들의 작품은 색다른 이미지의 세계를 선사한다.

전남도립미술관(관장 이지호)은 오는 2024년 3월까지 기증 작품전 ‘시적추상’(時的抽象)전을 연다. 지난 20일 개막한 이번 전시에서는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유영국 외에도 고화흠, 오숙환, 이철주, 진유영, 강운, 이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기증을 매개로 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문화자산의 가치가 지역사회에 골고루 환원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이지호 관장은 “미술관은 지금까지 수증된 작품을 깊이있게 연구해 기증품의 예술적 가치를 조명했다”며 “이번 전시는 기증 작품이 내재한 고유한 가치와 예술적 미학을 함께 탐구해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모두 3개의 소주제로 구성됐다. ‘한국적 추상-사유의 세계’, ‘서정적 추상-자연의 생명력’, ‘관념적 추상-색채의 풍경’이 그것.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작품인 ‘한국적 추상-사유의 세계’는 김환기와 유영국의 작품을 만난다. 김환기는 산과 달을 비롯해 항아리 등 자연적이면서도 전통적인 소재를 매개로 우리 고유의 정서를 형상화했다. 전시실에서 만나는 작품 ‘무제’는 중앙에 특정 모형의 도형을 배치하고 사방으로 기다란 무늬를 배치한 그림이다. 특정한 사물이나 자연을 압축적으로 묘사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보는 이에게 독특한 미감을 전해준다.

유영국의 ‘산’은 무엇보다 단순화한 산의 이미지가 시선을 끈다. 계단 너머로 커다란 조각이 배치된 듯한 그림은 산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형상으로 다가온다. 세세한 숲이나 나무 등은 제거하고 전체적인 윤곽만을 남겨 둔 모습은 사뭇 강렬하다.

김소라 팀장은 “유영국은 초기에는 기하학적 추상을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할된 면의 비구상적 형태로 산을 형상화한 작업을 진행했다”며 “이후에는 동양적 사유를 투영한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추구했다”고 밝혔다.

‘서정적 추상-자연의 생명력’(1980년대~1990년대)은 자연과 교감을 토대로 내면을 추상적으로 묘사한 고화음, 이철주, 오숙환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고화음은 이상적 세계를 추상적으로 표현했으며 이철주는 선과 면의 적절한 배치를 매개로 우주의 기운생동이 느껴지는 수묵추상에 초점을 맞췄다. 오숙환은 먹을 운용해자연의 순간성에 주목한 추상을 펼쳤다.

‘관념적 추상-색채의 풍경’(2000년대 이후 작품)에서는 강운을 비롯해 이인, 진유영의 작품을 만난다. 이인은 해질 무렵의 바다 풍경을 번짐과 대비로 묘사했으며 강운은 깊고 푸른색의 추상화로 슬픔을 승화한 추상화를 선보인다. 진유영은 붓자국으로 채워진 색면과 기호학적 구도로 내적 세계를 드러낸다.

이지호 관장은 “이번 전시를 매개로 기증 작품이 공공 자산이라는 관점에서 그 의미와 가치가 널리 확산됐으면 한다”며 “귀중한 작품을 기증해 주신 작가를 비롯해 기증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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