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귀한 단순함 고요한 위대함, 전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2024.03.28.I위드인뉴스
[위드인뉴스 김현비]

한국의 1920년대부터 1970년대를 중심으로 국내에서 전개된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역사를 조망한 전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는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한국 대표 추상미술가 47인의 작품 150여 점을 통해 한국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역사를 조망한다.

특히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건축과 디자인 등 연관 분야와 접점을 형성하고, 당대 한국 사회의 변화와 연동되면서 한국 미술의 외연을 확장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국 추상미술이 받은 오해들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점과 선, 원과 사각형 등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 원색의 색채, 화면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회화의 한 경향이다. 서구에서는 몬드리안, 칸딘스키, 말레비치와 같은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각광을 받고, 20세기 내내 현대미술의 주요한 경향으로 여겨졌다.

국내에서도 기하학적 추상은 1920-30년대 근대기에 등장해 1960-70년대에는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등 한국 미술사의 주요 변곡점마다 각기 다른 양상으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장식적인 미술 혹은 한국적이지는 않은 추상으로 인식되며 앵포르멜이나 단색화와 같은 다른 추상미술의 경향에 비해 주변적으로 여겨져 왔다.

확실히 초기 한국 추상미술의 형태를 보았을 때, 서양의 유명한 화가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몬드리안의 색채나 칸딘스키의 모형, 피카소의 큐비즘 등의 모습을 띄고 있기에, 겉으로만 보았을 때는 서양 미술을 흉내 낸 미술이라는 오해를 불러오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아는 유영국,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 나오기 전의 한국의 신조형파 기하학적 추상미술 화가들의 피와 땀이 존재했기에 단순히 서양의 작품을 따라한 장식 미술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1957년에 변영원, 김충선, 이상욱, 조병현 등의 화가, 다지이너, 건축가들이 연합한 신조형파는 독일의 바우하우스를 모델 삼아 한국전쟁 이후 국가 재건기에 미술, 건축, 디자인의 새 역할을 모색하였다. 예술을 실현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 안에 들어있는 깊숙한 욕망을 꺼내어 창작으로 승화시키는 매우 복잡하고도 개인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히 예술을 자신의 개인적 욕망으로만 남기지 않고 산업 생산품에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경제적 창출을 통해 국가의 전쟁 복구를 도우려 했다. 물론 진보적인 그들의 이념은 구체적으로는 실현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 분야의 예술가들이 연대하고자 한 점만으로도 신조형파의 활동은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고귀한 단순함 고요한 위대함

독일의 비평가 빙켈만은 그리스 미학에 대해 ‘고귀한 단순함 고요한 위대함’이라 표현했다. 이는 물론 고대 그리스 미술도 훌륭하지만, 한국 추상미술에도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한다.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에서는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하는 과정을 거쳐 추상을 제작하거나, 자연이 불러일으키는 서정적인 감성을 부여한 작품들이 많이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김환기, 유영국, 류경채, 이준 등이 있다. 한국의 추상미술은 한국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가장 한국적인 색을 나타낸 작품들이 이들의 작품이다.

특히 1세대 추상미술가 김환기와 유영국은 그림이란 그리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 심지어 인격의 반영이라고 보는 문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미술에 입문했다. 그렇기에 자연 역시 단순히 묘사한 것이 아닌 자연이 주는 울림, 고요, 때로는 역동하는 모습의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담아내는 매개로 보았다. 그 자체로 그림 속에서 살아 생동하는 기운생동의 존재였던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추상화가 몬드리안은 결코 곡선을 허용하지 않았다. 대각선조차 허용하지 않은 그의 작품은 완벽에 가까운 수직과 수평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뉴욕과 같은 레고 모양 대도시의 역동을 담아내는 것에 성공하였다. 재즈 소리가 날 것 같은 몬드리안의 작품과 반대로 자연이 지닌 부드러운 선과 형태에 기초한 한국의 추상미술은 기분 좋은 바람 소리,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 울렁거린다.

단순하고도 고요한, 부드럽고도 시원한 색채, 동양적인 시선의 자연의 모습들. 한국 추상주의 미술은 화가들의 마음이자 개인들의 우주이다.




추상미술은 난해하거나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나, 한국의 추상화가들이 걸어온 길을 찬찬히 따라가면서 미처 잘 알지 못했던 화가들과 새로운 시도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으니 이번 전시를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전시 개요
전시명 :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시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전시기간 : 2023.11.16 ~ 2024.05.19(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시간 : 10:00 ~ 18:00
주최 : 국립현대미술관

* 해당 전시는 사진 촬영이 가능합니다.


*기사 다시보기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