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더 커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16개 향이 넘실댄다

2024.04.17.I한겨레신문
지구촌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미술 잔치가 시작됐다.

1895년 창설 이래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미술제로 우뚝 선 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17일(현지시각) 베네치아 시내 자르디니 공원과 옛 조선소 자리인 아르세날레, 시내 곳곳에 흩어진 88개 나라의 국가관 및 본전시장, 참여작가 330명의 작품들을 일제히 전세계 언론에 공개하면서 11월24일까지 이어질 전시 대장정의 첫발을 뗐다.

브라질 출신의 남미권 큐레이터로는 처음 전체 비엔날레 총감독이 된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는 ‘어디에서나 이방인’이란 전체 주제 아래 3세계권의 망명자, 난민, 추방자, 원주민 등에 주목한 낯선 작품들을 본전시에 대거 등장시켰다. 한국을 비롯한 상당수 국가관도 이런 주제에 호응한 전시들을 기획했다. 특히 자르디니 공원 안쪽의 한국 국가관은 한반도의 역사가 깃든 냄새라는 색다른 콘셉트로 이방인과 자국인의 경계를 넘어선다는 취지의 전시를 꾸려 현지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한국관은 1995년 미디어아트 거장 백남준의 열렬한 노력으로 자르디니 공원 안에 세워져 지난 30년간 한국 현대미술을 국외에 알리고 스타 작가의 산실 구실을 했던 중요한 공간이다. 올해는 덴마크 기획자 야콥 파브리시우스와 이설희 기획자가 역대 최초로 공동예술감독을 맡아 유럽에서 활동해온 중견작가 구정아씨의 냄새 작업을 내세운 기획전 ‘오도라마 시티’를 내놓으며 페드로사의 이방인 콘셉트를 독자적으로 해석해 표현했다.

구 작가와 두 기획자는 지난 세기부터 지금까지 한국인의 기억에 남은 16가지의 냄새들을 시민 설문조사를 통해 수합한 뒤 다국적 조향사들에게 향을 제조하게 하고 투명 통창이 뚫린 전시장 안팎 여기저기에 숨은 듯 배치된 달걀 모양의 16개 세라믹 볼 분무장치로 흩뿌리며 시각∙후각적으로 경계를 넘어선 공감각적 전시를 시도했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왼쪽에 붙어있는 벽돌 건축 공간에서는 오른쪽 발끝으로만 몸을 지탱한 채 좌대 위에 선 특유의 중성적인 캐릭터 인물상이 코에서 향을 내뿜는 색다른 광경도 볼 수 있다. 인근 본전시관(중앙 파빌리온)에는 한국 근대작가로는 처음 초대된 리얼리즘 거장 이쾌대(1913~1965)의 자화상과 친일행적으로 비판받았던 한국화가 장우성(1912~2005)의 남녀 그림이 내걸렸고, 89살의 여성 원로조각가 김윤신씨의 나무조각상과 성적 소수자들의 역사적 궤적을 담은 퀴어작가 이강승씨의 작품도 초대돼 관객들을 맞았다.

올해 비엔날레에서 한국미술의 외형적 존재감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커진 듯한 분위기다. 한국관 전시와 본전시 말고도 비엔날레와 연관된 한국 미술 전시는 무려 8개에 달한다. 역대 최대 규모다. 우선 내년 한국관 건립 30돌을 기념해 900년 묵은 몰타기사단 수도원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여는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는 역대 참여작가 36팀의 전시작, 재제작품, 신작 등을 망라해 대형 전시판을 벌여놓았다. 역시 내년 창설 30주년을 기념해 광주비엔날레 재단이 자르디니 공원의 정문 바로 앞에 벌여놓은 아카이브 특별전 ‘마당’과 한국 초기 추상화가인 유영국(1916∼2002)의 첫 유럽 회고전, 한국적이고 우주적인 서정이 가득한 추상화를 그렸던 이성자(1918∼2009) 개인전, 숯그림으로 유명한 이배 작가 개인전은 비엔날레의 명칭을 후원기관으로 붙여 쓰는 공식 연계 전시들이다.

특히 전속사 피케이엠갤러리와 미국 페이스갤러리가 마련한 유영국 전시는 이건희기증컬렉션과 유족이 소장한 작품들 가운데 미공개 작품들과 기존 수작들과 엮어 내보인 얼개가 눈에 띈다. 연계전시는 아니지만, 다국적 작가공동체 나인드래곤 헤즈(대표 박병욱)가 김찬동 커미셔너의 조력으로 한국 작가 14명을 포함한 전세계 작가 40명과 주데카 섬의 스파지오 펀치 미술관에 차린 합동 기획전 ‘노마딕 파티’와 최정주 기획자가 자르디니 공원 입구 갤러리에 차린 하인두, 박서보, 고영훈, 정혜련 작가의 4인전 ‘한국 현대미술의 정수’도 주목된다.

16일 찾은 ‘노마딕 파티’의 전시 준비 현장은 열기가 넘쳤다. 19일 전시 개막을 앞두고 층고가 높고 폭이 좁은 터널 같은 공간에서 서예가 황석봉, 공예작가 황란씨, 설치작가 박영훈씨 등 10여명의 작가가 땀방울을 흘리며 작업에 몰입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 국가관 감독을 한국 기획자가 맡은 것도 과거엔 없던 양상이다. 일본관의 전시감독을 지난해 광주비엔날레 본전시 감독이었던 이숙경 영국 휘트워스 미술관장이 맡았고, 싱가포르관은 지난 2022년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이었던 김해주 싱가포르아트뮤지엄 큐레이터가 꾸렸다.

베네치아 현지는 비엔날레 기간을 즈음해 마련된 드 쿠닝, 카츠, 켄트리지, 브래드포드 같은 현대미술 대가들의 특별전 광고와 전단지들이 공항 수상버스터미널과 변두리 골목 여기저기 붙고 수상버스에도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는 등 축제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러나 가자 지구 침공사태의 가해국인 이스라엘의 국가관은 국제여론의 폐쇄 압박이 지속되자 기획자와 작가가 17일 가자 지구 휴전이 이뤄져야 전시하겠다는 영문공고를 붙인 채 전시장을 비웠다. 2년을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의 침략국 러시아는 2022년에 이어 올해도 국가관 전시를 접고 대신 볼리비아에 전시장을 빌려줘 뒷말을 낳았다.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19일까지 사전 공개를 마치고 20일 시상식을 겸한 공식개막식을 열면서 일반 공개를 시작한다. 시상식에선 황금사자상 국가관상·최고작가상, 본전시에 초대된 35살 이하 젊은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은사자상, 국가관·본전시 특별언급상 수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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