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부터 실험미술까지…K아트 유산, 세계가 주목

2024.04.20.I중앙선데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 작고 작가 재조명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미술축제인 베니스비엔날레(베네치아 비엔날레)가 20일 개막한다. 비엔날레 본전시와 각 국가관 전시 외에도 비엔날레 기간에 전세계에서 온 방문객을 사로잡고자 하는 수많은 장외 전시들이 베네치아 도처에서 경쟁을 벌인다. 이중 올해 본전시 총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가 선정한 공식 병행전시(collateral event)는 30개뿐이다. K아트의 높아진 위상을 반영한 듯 한국 전시가 3개에 달하는데, 그중 2개는 작고한 작가를 재조명하는 전시다.

먼저, 베네치아의 유서 깊은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에서 유영국미술문화재단이 개최하는 한국 제1세대 추상미술가 유영국(1916~2002)의 회고전 ‘무한세계로의 여정’이 있다. 대비되는 원색을 대담하게 병치했는데도 불협화음이 없으며 색채가 빛을 발산하는 것 같은 유영국 특유의 회화 29점과 석판화 11점을 선보인다.

미국 미술전문지 아트뉴스는 ‘비엔날레 기간에 베니스에서 봐야할 전시 10선’ 중 하나로 이 전시를 꼽으면서 이렇게 평했다. “유영국의 1960년대와 70년대 추상화는 빛나고 밝으며 매혹적인데, 대조적인 색면이 그들만의 기이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건희컬렉션, RM 소장품도 전시 나와

“그 ‘기이한 조화’라는 표현이야말로 유영국 회화의 특징을 잘 요약해주는 것 같습니다”라고 전시를 기획한 미술사학자 김인혜 박사는 말했다. “원색을 쓰면서 저런 조화를 만드는 건 쉽지 않거든요. 바로 그 점에 서구 미술전문가들도 놀라는 눈치입니다. 세계 주요 미술관 관계자들과 컬렉터들이 전시장을 찾고 있는데, 다들 그림 앞에 오래 있더군요.”

그와 관련해 재단 이사장이며 유영국의 장남인 공학자 유진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와 ‘신사실파’ 미술 운동을 함께 하셨고 친하셨던 김환기 화백의 경우, 세계인에게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려고 고민하셨지만, 아버지는 ‘내가 한국인으로서 세상 그 누구도 그리지 못했던 것을 해낸다면 그게 바로 한국적인 그림이 되지 않겠나?’라고 하셨어요. 원색의 독특한 조화를 만들어내신 것이 바로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전시에 나온 그림들 중에는 국가 기증 이건희 컬렉션과 방탄소년단 리더 RM의 개인소장품도 있다. 유 교수는 말했다. “아버지 그림의 첫 구매자는 고 이병철 회장(삼성그룹 창립자)입니다. 그 전에는 한 점도 팔리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아버지의 그림을 보면 무엇을 추상화해서 표현한 것이냐고 물으며 이상해 하곤 했어요. (유영국이 각광받는) 요즘은 더이상 그걸 묻는 사람이 없지만요.” 유영국은 고향 울진에서 산과 하늘과 태양을 탐구하며, 이들 자연이 그의 눈과 마음에서 빛을 품은 색채와 추상적 형태로 구성되는 것을 표현했다.

유 교수는 덧붙였다. “김환기 화백이 미국에 가셨을 때 아버지도 가고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싶은마음이 있으셨어요. 하지만 영어를 잘 못해서 미국에 가봤자 국제미술계와 제대로 교류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가지 않으셨어요. 이제 이렇게 아버지의 작품이 세계인에게 보이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김환기는 1963년 뉴욕으로 가서 그곳에서 그의 작품세계의 절정인 전면점화를 발전시켰다. 유영국은 김환기에 비해 국제적 명성이 없었으나 최근에 급부상해 지난해 미국 뉴욕 페이스 갤러리에서 첫 해외 개인전이 열렸고 이번에 베니스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로 세계인에게 선보이게 된 것이다.

이번 전시는 16세기 베네치아 건축물이면서 마리오 보타 등 유명한 현대 건축가가 리노베이션한 곳이라는 장소적 특성을 최대한 살렸다. 운하와 정원을 앞뒤로 접한 1층에서는 한국의 자연을 모티브로 한 석판화를 선보이며, 고풍스러운 2층에서는 작가의 소형 작품들과 아카이브 자료들을 서재 같은 분위기로 전시한다. 현대적이고 심플한 3층 공간에서는 작가의 1960~70년대 절정기의 대형 회화들을 선보인다.

한편, 베네치아의 아르테노바에서는 이성자(1918~2009) 회고전 ‘지구 저편으로’가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로서 11월 24일까지 열린다. 전시 기획은 이성자 탄생 100주년 회고전이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릴 당시 관장이었던 독립 큐레이터 바르토메우 마리가 맡았다. 주최는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 이성자기념사업회, 갤러리현대다.

이성자는 김환기, 유영국 등 한국 제1세대 추상미술가들 중에 유일한 여성 작가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고 파리로 떠난 뒤 모국의 모친과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땅을 경작하듯 캔버스에 유채 물감을 점점이 쌓아 올린 ‘여성과 대지’ 연작을 창작했다. 이 연작으로 파리 화단의 인정을 받고 한국에 금의환향해 개인전을 열고 성장한 자식들과 재회했다. 그 후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마천루에서 내려다본 기하학적 도시 풍경을 자연의 요소와 결합하는 등 다양한 추상화 연작들을 계속 실험했다. 특히, 하나의 원반을 요철이 있는 두 반원으로 쪼갠 형상의 독특한 음양(陰陽) 기호를 창작해 향후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시켰다. 작가의 말대로 “동양과 서양, 자연과 기계의 합일”을 추구하는 작품이었다.

유영국 전시, ‘비엔날레 전시 10선’ 꼽혀

이번 베네치아 전시에 나온 20여 점은 초기 연작 ‘여성과 대지’와 후기 연작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우주’이 주를 이룬다. 전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마리 전 관장은 남성과 서구 중심의 사회와 예술계에서 여성으로서, 또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으로서 “미술 안팎으로 ‘타자(他者)’였던 이성자는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의 테마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와도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고 밝혔다. 또한 작가가 추구한 음과 양, 인간과 자연의 결합 등이 현대에 영감을 주는 바가 크다고 했다.

한편,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는 아니지만 한국의 작고 작가를 베네치아에서 선보이는 주요 전시가 또 하나 있다. 갤러리현대가 팔라초 카보토에서 7월 7일까지 여는 신성희(1948~2009) 회고전이다.

갤러리현대 도형태 대표에 따르면 신성희는 “파리에서 30년을 살면서 평면의 화면에서 입체 회화에 대한 고민을 탐구한 독보적인 작가”다. 그러한 탐구 과정에서 캔버스를 채색한 다음 일정한 크기의 띠로 재단하고 그것을 박음질로 이은 ‘박음 회화’ 연작(1993~1997)과 캔버스를 아예 띠로 잘라내 지지체에 묶어서 평면과 입체의 통합을 이룬 ‘엮음 회화’ 연작(1997~2009) 등 19점이 전시된다.

신 작가의 장남인 건축가 신형철 교수는 전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회화적인 효과와 평면에서 벗어난 효과가 공존하는 중간적인 특징을 관람객들이 주목해주셨으면 한다”며 “내가 건축가가 되고 여동생이 패션 디자이너가 된 이유는 모두 아버지 작품의 영향”이라고 했다.

백남준 ‘고인돌’ 보고 주먹밥 파티…베니스서 광주비엔날레 30주년 행사

지난 18일 베네치아(베니스)에서 한국 주먹밥 파티가 열렸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의 공식 병행전시 30개 중 하나인 광주비엔날레 30주년 기념 아카이브 특별전 ‘마당: 우리가 되는 곳’의 개막식에서였다. 주먹밥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시민들이 쌀을 모아 만들어 시민군에게 전달했던 것으로 돌봄·연대·민주 등 ‘광주 정신’의 상징이다. 광주비엔날레재단 박양우 대표가 말한 대로 “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생성해온 광주비엔날레에 어울리는 음식으로서 5·18 당시 주먹밥을 담은 함지박도 전시장에 나왔다. 개막식에서 강기정 광주 시장과 정병국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주먹밥을 만들어 외국 관람객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이 몇 년 후 베니스비엔날레 감독이 되는 일이 몇 차례 있었던 만큼 두 비엔날레는 인연이 깊다. 이번 아카이브전에서는 지난 14화에 걸친 광주비엔날레의 각종 자료들은 물론, 제1회 출품작인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 ‘고인돌’과 쿠바 작가 크초의 설치미술 ‘잊어버리기 위하여’가 전시된다. 또한 김실비·김아영·전소정 작가의 소수자와 이주민에 관한 미디어아트 작품이 전시되어 광주 정신을 베니스비엔날레의 올해 테마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와 연결한다.

기간 11월 24일까지 장소 일 지아르디오 비앙코 아트스페이스,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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