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 검푸른 태평양…깊은 파란색 그림의 근원

2024.05.10.I중앙일보
유영국의 고향 울진의 산과 바다

‘방방곡곡(坊坊曲曲).’ 한자 그대로 풀면, 반듯한 땅과 계곡 사이 구불구불한 땅을 모두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구석구석 모든 마을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단어가 우리나라 지형을 잘 설명해 준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이다 보니 골짜기가 많고, 그사이 길쭉한 땅과 그 아래 비교적 반듯한 땅이 다양한 모양으로 생겨났다. 지형 특성상 지도를 보면 가까운 곳 같아도 실제로는 산이 가로막혀 접근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방방곡곡 각기 다른 문화가 자랐던 것.

우리나라는 마치 주름진 것처럼 땅이 구겨져 있어서 그렇지, 주름을 편다고 가정하면 꽤 넓은 편이다. 사람이 어디 하늘 위에 떠서 사나, 땅 위에서 살지. 그러니, 표면적으로 치면 한국 땅이 그리 작다고만 할 수 없다는 게 내가 늘 외국인 친구들에게 우겨대는 한국의 특징이다.

일 유학 돌아와 긴 시간 바다 관찰
“산에는 뭐든지 있다” 평생 탐구

생동하는 자연 재현이 필생의 꿈
물감층 얇아도 차원 다른 깊이감

생전 소수 컬렉터만 알아봤지만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최고 전시

오지 울진의 유부잣집 셋째 아들

우리나라 방방곡곡에는 여러 산이 만들어 내는 이른바 ‘오지(奧地)’가 많다. 그런 오지 중 하나가 경상북도 울진이었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경상북도지만, 예전에 울진은 강원도였다. 태백산맥 동쪽 가느다란 평지를 따라 내려오면서, 강릉·동해·삼척을 지나 울진에 이른다. 지금도 서울에서 강릉까지는 차로 두 시간 반이면 간다지만, 거기서 다시 울진까지 내려가는 길은 꽤 멀다. 직선거리에 비해 서울에서 가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지역 중 하나가 울진이 아닐지.

그런 오지 중의 오지에서 유영국(1916~2002)이 태어났다. 울진의 ‘말루(抹褸) 유부잣집’ 셋째 아들이었다. 놀랍게도 울진에 가면 한옥으로 된 그의 생가가 아직 남아있다. 실제로 집안의 종부가 여전히 살고 있다. 강릉 유씨 가문은 원래 원주에 터를 잡았다가 일부가 산을 넘어 울진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원주의 400년 된 고가(古家)를 그대로 옮겨와 울진에 재조립해 지었다는 한옥이 유영국의 생가이다.

유영국은 꽤 부잣집에서 태어나 명문인 경성 제2고보에서 수학한 후 일본에서 최신 미술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제대로 붓을 잡지 못하다가, 1955년경부터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 김환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최초의 추상화를 시도한 과감하고 전위적인 화가였다. 그런 그가 1950년대 이후 자신만의 색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늘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이 ‘고향의 산’이었다. 울진의 산에서 영감을 얻은 자연의 힘을 캔버스에 옮기는 일. 그것을 유영국은 필생의 과제로 삼았다. 대체 그에게서 울진의 자연은 뭐가 그리 특별했던 걸까?

6·25 때 죽변항서 소주 팔아 생계 유지

실제로 울진에 가보면, 그의 생가 위치부터가 심상치 않다. 동쪽으로는 태평양이 바로 내다보이는 깊은 바다를 끼고 있고, 서쪽으로는 태백산맥 줄기를 따라 높고 가파른 산이 솟아오른 곳, 그 사이에 유영국의 생가가 있다. 더구나 산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하천들이 북쪽과 남쪽에 각각 흘러,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절묘한 교차점에 그의 생가가 놓여 있다. 이런 절경에 선인들은 정자를 세워두기 마련인데, 유영국의 집에서 10분 거리에 망양정이 있다.

울진 앞바다는 깊고 아름답지만, 나중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감흥이 많이 퇴색했다. 그러나 유영국의 어린 시절에는 그에게 많은 위안과 비전을 제공한 곳이 바로 이 바다였을 터. 그는 일본 유학 시절 최첨단 전위 예술을 하다가 고향에 돌아왔으나, 유화물감이나 이젤을 구경도 못 해본 사람들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앉아있을 처지가 못 되어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럴 때면 생가 근처 개목마을 바윗돌에 앉아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는 시간을 오래 보냈다. 이런 관찰이 화가에게는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니었던 듯, 유영국의 작품에서 나오는 깊이 있는 파란 색의 근원이 거기에 있지 않나 싶다.

울진 북쪽 죽변항 주변도 유영국이 결혼 후 살았던 곳이다. 그는 전쟁기 죽변사거리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며 소주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전쟁 통에 유동 인구가 많았던 항구에서 ‘망향’이라는 이름의 소주는 잘 팔렸다. 유영국은 죽변항에 들어오는 피란민 중 혹시 원산에서 내려오는 동갑내기 친구 이중섭이 있지 않을까 싶어, 사람들에게 그의 생김새를 일러주며 보게 되면 꼭 알려달라 당부하고 다녔다. 유영국은 전형적인 과묵한 ‘츤데레’ 스타일이었다.

선대 산소 명당, 유씨 집안 잘 돼

깊은 바다 못지않게 높은 산이 빼어난 곳이 또 울진이다. 울진의 산골 체험도 할 겸, 나는 유영국의 증조부 산소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그 묘소를 잘 써서 유씨 집안이 일어났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터라 더욱 궁금했다. 구전에 의하면, 어느 겨울날 유영국의 조부가 산에서 노루를 쫓다가 놓쳐버렸는데, 그 노루가 사라진 자리를 유심히 둘러보니 뒤로 암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명당이었다고 한다. 주변은 온통 흰 눈으로 뒤덮였는데 유독 그 자리만 눈이 녹아있더라고. 여기에 선대의 묘를 쓴 후 유씨 집안은 울진의 작은 마을 말루 최고의 부잣집이 되었단다.

과연 그 산소는 알고는 가지 못할, 길도 없는 산중에 있었다. 앞장선 사람이 멧돼지가 나타나지 않나 예의주시하면서 길을 내주어야 하는 곳. 그 옛날, 묘소까지 행렬이 와서 장례를 치르는 데만 7일이 걸렸다는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래도 막상 묘소까지 올라서면 아래로 끝도 없이 펼쳐지는 산들의 파노라마가 가히 압권이었다. 아, 이 정도의 깊이감은 있어야 한국의 산이지.

산소와 멀지 않은 곳에는 불영사라는 오래된 절도 있다. 요즘 대부분 절이 바로 앞까지 자동차가 진입해 운치를 잃었지만, 불영사는 아직도 오지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찌 이리 깊은 산에 저리 큰 절이 있나 하고 놀랄 때쯤에는 그 절이 ‘의병 근거지’로 쓰였다는 스토리가 따라붙게 마련인데, 불영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불영사는 평민 출신 의병장으로 유명한 신돌석이 의병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 울진 유지였던 유영국의 부친이 그에게 활동 자금을 많이 대줬다고 한다. 그는 산골에서 제때 공부할 시기를 놓친 사람을 위한 학교를 세워 교육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라이벌 김환기 파란색과 달라

어쨌거나 울진의 산은 유영국의 작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산에는 뭐든지 있다.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면, 다채로운 색.” 그는 40대에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들어서면서, 평생 ‘산’만을 탐구해도 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산은 각기 다른 계절과 날씨, 시간에 따라서 수도 없이 다른 모양과 빛깔을 가진다. 그뿐인가. 산은 다양한 감성을 불러일으켜서, 어떨 때는 장엄하고 숭고하고 심지어 위압적인데, 또 어떤 때는 따뜻하고 푸근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영원히 변화하는 자연의 에너지 자체를 화폭에 담을 수만 있으면! 그는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유영국의 작품은 울진의 첩첩산중과 태평양의 검푸른 바다의 영향인지 몰라도 그 색이 깊고 무겁고 때로 무서울 정도로 숭엄하다. 그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김환기가 전라남도 안좌도 출신으로 비슷한 파란색을 써도 훨씬 여릿하고 영롱하고 서정적인 것과는 구별된다. 김환기의 작품이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면, 유영국의 작품은 끝 간 데 없이 깊다. 분명 2차원의 평면 위에 얇은 물감층을 바른 것뿐인데도, 그의 작품은 마치 화면 너머 다른 차원이 존재할 것만 같은 깊이감을 선사한다.

그런 유영국 작품의 매력을 그가 살아있을 때는 소수의 한국 컬렉터만이 알아주었을 뿐이었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2002년 타계 후 그의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이탈리아 베니스의 퀘리니 스탐팔리아 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열리는 중. 유명한 예술잡지 ‘프리즈’에서는 100개가 넘는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 중 ‘최고 전시 6선’에 유영국 개인전을 꼽았다. 울진 오지에서 태어나 일본을 제외하고는 외국 생활을 해본 적도 없는 철저한 토종 화가 유영국. 그런 그가 오늘날 세계 미술의 중심 도시 베니스에 깃발을 꽂은 장면은 조금 감동적이다. 베니스의 운하 옆으로 카메라를 둘러매고 조국 산천을 쏘다니던 유영국의 젊은 시절 사진이 찰칵 지나간다.

김인혜 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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